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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by 잔지바르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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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글을 읽기 전 원자력 발전소의 원리 및 발전 방식에 대해 설명한 글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https://gdsymbol.tistory.com/entry/원자력-발전소의-원리-발전-방식-구조

 

원자력 발전소의 원리, 발전 방식, 구조

원자력 발전의 원리 화력발전의 경우 석탄이나 석유, 가스를 이용하여 물을 끊이고 이때 발생되는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원자력 발전도 물을 끓여 증기를 생산하

gdsymbol.tistory.com

 

동일본 대지진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경 도호쿠 오시카 반도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출처 : 국민일보

 

본토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지진 자체로 인한 피해는 경미했으나 해양판인 태평양판이 대륙판인 오호츠크판 밑으로 가라앉는 해구형 지진으로 지각의 고저차가 생겼고 이로 인해 쓰나미가 발생하게 됩니다.

 

쓰나미는 2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와 일본 정부 추산 16~25조 엔의 재산 피해를 주게 됩니다.

이때 발생한 쓰나미의 높이가 최고 15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쓰나미는 후쿠시마현에 설치되어 있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됩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출처 : 정경시사FOCUS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는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 군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로 1호기는 1967년 7월 25일에 착공하여 1971년 3월 26일에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순차적으로 5기가 더 건설되어 총 6호기까지 건설되었습니다. 7, 8호기도 건설 예정이었지만 폭발 사고로 인해 계획이 취소되었습니다.

 

최초 후쿠시마 원전은 해안으로부터 25m 높이 위에 건설하려 했으나, 지진으로부터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파내 땅 밑에 묻혀있던 암반 위에 건설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지대가 낮아져 쓰나미의 위험에 취약하게 됩니다.

 

지진이 발생함에 따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원전 안전을 위해서 자동으로 원자로 1-3호기가 긴급 정지되게 됩니다(당시 4호기는 분해점검으로, 5-6호기는 정기검사로 발전 정지 중 이었습니다). 또한 원자로 주변의 송전선로와 변전시설 등이 지진으로 인해 손상되며 모든 외부 전력이 차단됩니다.

 

이에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을 공급하는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1호기부터 6호기까지 모두 가동되었으며, 운전 중이던 1~3호기의 노심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기 위한 비상노심냉각계통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됩니다.

 

그러나 지진발생 약 50분 후 발전소 설계 당시 예상했던 지진 해일의 높이 5m를 훨씬 초과하는 15m의 지진 해일이 발전소를 덮치게 됩니다. 이에 지하에 설치된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침수되어 정지하였고, 발전소 내의 모든 전기시설 역시 손상되게 됩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원자로 안전을 위한 최소 전력마저도 없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냉각수 펌프가 가동을 멈추게 됩니다. 이에 따라 냉각수가 급속히 증발하여 원자로 내부 온도 및 압력이 상승하게 되고, 결국 원전전원완전상실사고(Station Black Out, SBO)가 선언되게 됩니다.

 

결국, 원전 내의 모든 장비들이 작동을 멈춰 원자로 내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원자로 1-3호기는 모든 냉각수가 증발하면서 312일 노심 온도가 섭씨 1200도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고온에 의해 우라늄을 감싸고 있던 1방호벽인 펠렛과 제2방호벽인 피복관이 녹아내렸고,, 제3방호벽인 20cm 두께의 철제 원자로 압력용기(Reactor Pressure Vessel)도 녹아내리며 구멍이 뚫려 핵연료가 격납 용기 내에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한편 연료봉에 있는 지르코늄은 1,200℃를 넘으면 산화 반응을 일으켜 수소를 내놓는데, 이 수소가 격납용기내 수증기와 함께 고온고압을 유지하게 되었고, 121호기, 143호기에서, 15일 2호기, 4호기에서 수소폭발을 일으키며 격납 시설을 손상시켜 방사성 물질의 대기 유출이 시작됩니다.(당시 4호기 발전 시설은 점검 중이었으나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의 냉각시스템 작동 정지로 저장소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유출된 방사성 물질로 발전소로부터 250km 떨어져 있는 도쿄에도 평상시보다 23배 급등한 0.809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능 수치가 측정되게 됩니다.

 

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0~7등급까지의 사고 등급 중 최고 위험 단계인 7등급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 등급은 전 단계에 비해 심각성이 10배씩 증가하는 구조로, 7등급의 경우 방사성 물질의 대량 방출 사태가 발생된 경우에 부여됩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재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조사한 일본 국회조사위는 2012년 7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였다”고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인재하고 지적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관료주의 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은 관료주의가 강해 원자력안전기반기구(JNES) 등 전문가 조직보다는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조직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이 규제 권한을 갖고 있어 원전사고에 대한 정확한 기술적 판단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당시 간 나오토 총리를 보좌했던 원자력안전보안원장 데라사카 노부아키 역시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안전성보다 경제성을 우선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는 2002년 7월 ‘장기평가’ 예측을 통해 후쿠시마 해역을 포함한 해역에서 매그니튜드 8.2 전후의 쓰나미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이 자료에 근거해 2008년 3월 원전에 최대 높이 15.7m의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예측치가 나오고, 도쿄전력의 토목조사 부서는 ‘높이 10m의 방조제를 설치해야 한다’는 안을 경영진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해발 10m 높이 위에 건설돼 있어, 방조제를 보강했다면 15.7m의 쓰나미가 덮쳐도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원전 사고 직후 미국 정부가 일본 측에 냉각기술지원을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절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유는 미국정부의 기술지원은 원자로의 폐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12일에 1호기가 첫 수소폭발을 일으키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 전에 해수 주입을 결정”했지만 도쿄전력은 발전소 폐기가 우려돼 이를 무시했습니다.

이후 3, 4호기 순으로 수소폭발이 이어지면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 세슘 등이 대기 중에 방출되게 됩니다. 이에 보다 못한 미국이 “일본 정부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CH-47 헬기와 고압 소방차, 경찰의 특수 살수차 등을 이용해 해수 투입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2011년 3월 2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회에서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장순흥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 이후 전기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커졌다”며 “사고 당시 관련 절차서에 따라 안정화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따르지 않고 헬기 등을 동원해 살수작업을 벌인 것과 해수 등을 이용해 과감하게 냉각수를 주입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 사고를 키우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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